일본은 먼저 인도·태평양 전략을 만들어 굴기하는 중국을 봉쇄하려고 했다.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이번에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미국이 호응해 일본의 세 번째 팽창은 미중 패권경쟁으로 비화하는 중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이 그려 놓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고, 그 결과 지금 한국 경제는 예상 경로를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일본은 1968년에 서독을 추월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 후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었던 미국마저 급속도로 따라잡고 있었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보다 높아지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 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가지고 미국의 자산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마쓰시타(현재 파나소닉) 그룹은 유니버셜 픽처스를, 소니는 컬럼비아 픽쳐스를 경쟁적으로 인수했다. 특히 미국을 대표하는 주요 영화사 인수는 미국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했다.
시가총액 순으로 20위까지 꼽았을 때, 일본 기업이 무려 14개였다.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사스나 메르스 같은 감염병 대처 경험이 없었기에 의료계에 방역 매뉴얼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문제는 오래도록 일본을 괴롭혀온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플라자 합의는 일본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일부 산업의 노동조합이나 일부 지역의 시민들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했고, 때로 제품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이 일본 기업의 팔다리를 묶어놓은 사이에 삼성전자나 TSMC 같은 외국 반도체 기업들이 급성장했고, 이것은 결국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몰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일부 관료들은 오히려 미국의 힘을 빌려서 일본을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미국 측에 몰래 자료를 넘겨주기까지 했다.
독재 정권, 권위주의 정권에 끊임없이 충성하며 친일 청산에서 벗어난 과정과 유사하다.
중국을 구 소련을 대체하는 자유 진영의 새로운 경쟁자로 규정하고, 이를 대미 종속의 새로운 근거로 삼았다.
장기침체가 버블의 발생과 붕괴로 시작되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인구 감소, 특히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는 대단히 보수적이어서 여성들을 전업주부로 묶어두거나 일을 하더라도 파트타임 잡에 머무르게 하는 경향이 강했다.
다시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포기하고 소위 ‘각자도생’의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도 전파되어 한동안 유행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사실 장기침체 속 일본 젊은이들에게 먼저 나타난 사회현상이다.
우리 국민이 가진 엄청난 물질주의 욕망도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정신세계마저 황폐화되고 풍요 속에서도 끊임없이 물질적 빈곤을 느끼는 ‘한국형 자본주의 정신세계’를 가지게 되었다.
한강의 기적도 이러한 비교와 경쟁 속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아시아에서 농지 개혁을 단행하지 않은 나라들은 대부분 경제발전 속도가 늦거나 중간에 주저앉았다.
이승만은 농지 개혁 등으로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켜버렸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데는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발전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베트남전 참전이었다.
1973년까지 8년간 5만 명 규모의 전투부대를 파견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직접적으로 준 돈만 46억 달러였고, 미국으로부터 받은 군사 원조나 경제 지원 등 간접적인 지원까지 합하면 총 81억 달러에 이르렀다.
베트남 파병은 미국 수출 길이 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본으로부터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해 가공한 뒤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미일 3각 경제 구조가 함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미일 3국 협력 구조가 다시 만들어진 것은 전두환 정권 때였다.
국가 채무도 많아서 당시 한국은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세계 4대 외채 대국이었다.
미국을 방문해 레이건 대통령에게 ‘한국은 태평양에서 자유 진영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일본은 한국의 군사 안보적 역할에 협조해야 한다’면서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전 세계의 많은 개발도상국은 선진국 진입에 대체로 실패했다. 소위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세계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1960년에 중진국이었던 101개 국가 중 2008년까지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가는 대한민국과 아일랜드, 대만 등 13개국밖에 없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국가들로는 러시아, 멕시코, 브라질,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화 물결’을 잘 이용한 결과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1991년 소련 체제가 붕괴되면서 시작되었다.
서구에서는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고 유럽 단일 경제권이 형성되었다.
한국도 2004년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자유 무역 협정을 급속히 확대해갔다.
해외여행이 일차적으로 열린 것이 1983년이었다.
50세 이상의 국민이 200만 원을 1년간 예치하는 조건으로 연 1회 관광 여권이 발급되었다.
당시의 노태우 정권은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또 다른 중요한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바로 인천국제공항 건설이다.
1989년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로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반공 교육을 받아야 했다.
1990년대 여행 자유화는 영어 교육 붐과 더불어 ‘기러기 아빠’라는 독특한 사회현상을 낳았다.
나는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은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은 자신감이다.
자신감을 잃으면 쉽고 빠른 길을 옳은 길이라 착각하게 된다.
지금 읽어도 가슴 벅찬 이 책은 1989년 8월 출간된 후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100만 부가 판매되며 ‘기네스북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웠다. <세계는 평평하다>
요즘 우리가 교두보로 활용하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 국가 등의 시장을 가장 먼저 개척한 것도 대우였다.
당시 일본의 휴대폰 내수 시장은 미국의 2배 가까이 컸고 또한 급격히 성장하는 시장이었다.
1999년에 도코모는 세계 최초로 핸드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모드i-mode’를 내놓았다.
사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연결한 국가다.
일본은 특이하게 무선 인터넷이 유선 인터넷보다 먼저 보편화된 나라였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전국의 중증환자 수를 팩스로 집계하는 모습이 뉴스에 나왔는데, 그걸 보고 모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일본의 전자왕국은 “장인정신 때문에 망했다”는 커다란 교훈을 남긴 채 쓰러져 갔다.
일본 기업들은 가격 경쟁보다는 기술이나 품질 경쟁을 통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했다.
일본의 최고경영자들은 제품 개발이나 영업에는 신경을 썼지만, 광고나 브랜딩, 마케팅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광고나 브랜딩은 담당 임원들이 할 일이지 경영자의 일은 아니라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도요타나 파나소닉과 같은 대표적인 일본 기업은, 생산 담당 임원과 영업 담당 임원이 교대로 최고경영자로 승진하는 전통이 있을 정도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엄청난 보수를 받는 경영자가 일본에는 거의 없다.
소니의 경우 파나소닉이나 미쓰비시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의 전통적인 전기·전자 기업도 아니었고 전후에 생겨난 벤처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한류 팬은 약 1억 7,8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도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물가 수준을 감안한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은 2020년에 일본을 넘어섰다.
수출 보복’은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전략 물자인 반도체 핵심 물품의 수출을 금지하는 것으로 대응한 사건이었다. 중국이 쓴 방법을 똑같이 반복한 치졸한 행동이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이러한 정서를 조장하고 이용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이런 정치인의 전형이 아베 신조였다.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이 쿼드와 안보 다이아몬드 구상을 거쳐서 처음으로 구체화되었다.
인태전략과 쿼드는 이후 바이든 행정부도 그대로 계승해 중국을 견제하는 주요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중국을 WTO에 가입시켰다.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중국 경제가 성장하자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에 중국을 편입시켰던 것이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는 러스트 벨트 지역의 노동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예상치 못한 이변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중 패권경쟁의 발발로 전 세계가 동아시아로 눈을 돌린 사이에 러시아가 유럽을 치고 들어온 것이다.
일본은 대한국 전략도 따로 세우고 실행함에 따라 한국을 뒤흔들어 놓았다.
자유주의 사관’이란 일제가 저지른 전쟁이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아시아 민중을 해방하기 위해 치른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보는 역사관을 말한다.
일본은 중국, 러시아 같은 대륙 세력을 봉쇄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2012년경부터 해왔다. 그리고 이것이 미중 패권경쟁으로 전이되면서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무역전쟁은 중국 경제만이 아니고 자국 경제에도 마이너스 충격을 주는 데다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도 충격을 준다.
인도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보다 먼저 선점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아세안ASEAN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을 줄인 이름으로 태국, 필리핀,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10개국의 경제 공동체다.
오히려 부모 세대는 자신의 노후를 더 걱정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후를 맞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노후대비의 핵심은 건강이다. 중장년기까지 축적한 소득은 거의 대부분 노년기에 병원비로 소진된다.
큰 기대없이 그냥 읽었던 책인데
얻은게 많은 책이다.
경제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정치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지만
경제와 정치에 대해 연결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고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이다.
몰랐던 세계 상황을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설명을 해주니까
우리나라가 성장하게 된 과정을 좀 더 디테일하게 알 수 있어서 재미있다.
흘려들었던 이야기들 속에 있던 몰랐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흥미롭다.
책에서 소개했던 다른 '경제'관력 책들도 많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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